2018년 중국과 북한을 위해 사역하다 순교한 기독교인 변호사를 초상화와 명판, 그리고 추도 연설로 추모하다

2018년 중국과 북한을 위해 사역하다 순교한 기독교인 변호사를 초상화와 명판, 그리고 추도 연설로 추모하다

5월 23일, 한국 VOM 의 현숙 폴리 대표와 최고경영자 에릭 폴리 목사는 차이나에이드(ChinaAid)의 대표 밥 푸 목사, (사)애드보켓코리아의 고영일 사무총장과 함께 2018년 2월에 순교한 중국 기독교인 리바이광 변호사의 명패와 그의 초상화를 헌정하는 제막식을 열었다.

[하얏트 무어(Hyatt Moore)가 작업한 리 변호사의 초상화]

“리 변호사는 인권을 수호하는 변호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던 분으로, 2018년 2월에 의심스러운 정황 속에 사망했습니다.” 폴리 현숙 대표는 말했다. “중국 당국은 그의 간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리 변호사는 겨우 49살이었습니다. 그는 술, 담배도 하지 않았고 우리와 다른 이들은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매우 건강한 상태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그의 부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중국 정부가 거부했으며 당국은 리 변호사의 시체를 서둘러 화장하도록 했다. 폴리 현숙 대표는 질병 없이 건강하다가 간 질환으로 사망을 선고받은 인권 변호사는 리 변호사만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한국 VOM의 중국 사역 파트너들은 2017년 10월에 저장성에서 리 변호사가 납치되어 폭행을 당했고 사지를 찢어 놓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고 전했다. 그가 정부에게 땅을 빼앗긴 농부들을 변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폴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리 변호사는 중국과 북한의 지하교인들을 대신해 고난받던 유일무이한 인물이었습니다.” 폴리 대표는 리 변호사가 사망하던 당시, 그가 과거 한국 VOM의 북한 사역 파트너였던 조선족 출신 한충렬 목사의 가족을 변호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 목사는 2016년 4월, 장백에서 순교했다.

“리 변호사는 인권을 수호하는 변호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던 분으로, 2018년 2월에 의심스러운 정황 속에 사망했습니다.” 폴리 현숙 대표는 말했다. “중국 당국은 그의 간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리 변호사는 겨우 49살이었습니다. 그는 술, 담배도 하지 않았고 우리와 다른 이들은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매우 건강한 상태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그의 부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중국 정부가 거부했으며 당국은 리 변호사의 시체를 서둘러 화장하도록 했다. 폴리 현숙 대표는 질병 없이 건강하다가 간 질환으로 사망을 선고받은 인권 변호사는 리 변호사만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한국 VOM의 중국 사역 파트너들은 2017년 10월에 저장성에서 리 변호사가 납치되어 폭행을 당했고 사지를 찢어 놓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고 전했다. 그가 정부에게 땅을 빼앗긴 농부들을 변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폴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리 변호사는 중국과 북한의 지하교인들을 대신해 고난받던 유일무이한 인물이었습니다.” 폴리 대표는 리 변호사가 사망하던 당시, 그가 과거 한국 VOM의 북한 사역 파트너였던 조선족 출신 한충렬 목사의 가족을 변호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 목사는 2016년 4월, 장백에서 순교했다.

리 변호사의 추모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차이나에이드의 밥 푸 목사가 리 변호사를 기리는 추도 연설을 하였고, 저명한 미국인 화가 하얏트 무어(Hyatt Moore)가 작업하고 순교자의 소리에 기증한 리 변호사의 초상화가 제막되었다. 또한, 리 변호사의 명패가 한국 VOM 순교자 연대표에 추가되었다. 순교자 연대표는 스데반의 시대부터 현재까지 순교한 기독교인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순교자의 소리 사무실에 있는 순교자 연대표]

리 변호사는 아내와 한 명의 자녀를 남기고 떠났다. 리 변호사처럼 순교한 기독교인들의 가정을 돕기 원한다면 한국VOM 사무실로 문의바란다.(02-2065-0703)

밥 푸 목사 약력

bob fu

Bob Fu

China

밥 (희추) 푸 목사는 중국의 핍박받는 기독교인들의 목소리가 되어 전 세계에 그 핍박의 실태를 알리는 대표적 인사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1989년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시위가 진행되던 천안문 사태 당시 학생회장이었다.

밥 푸 목사는 베이징에 있는 중화인민대학교 국제관계 학부를 졸업하고, 베이징 행정대학과 베이징 중국공산당 학교에서 1993에서 1996년까지 공산당 관료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그는 베이징의 한 가정교회 지도자로 섬기다 1996년에 자신과 아내 모두 ‘불법 전도’ 혐의로 두 달간 투옥되었다. 밥과 하이디는 1997년 종교 망명자 신분으로 도미(渡美)했으며, 중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높이고, 종교의 자유와 관련 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2002년 차이나에이드(ChinaAid)를 설립했다.

차이나에이드의 대표인 밥 푸 목사는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하원 외교위원회,  미 종교자유위원회(USCIRF),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 유엔 인권위원회(USCHR), 외신기자협회, 유럽위원회와 유럽연합의회에서 연설하기도 했다.

밥 푸 목사는 영국 더럼대학교 박사과정에 있으며,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교를 졸업했고, 미드웨스트대학교에서 국제 기독교 리더십으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그곳에서 종교와 공공정책 분야 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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