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바스 지역: 수감되었던 기독교인, 전쟁의 최전선에서 부활절 성가대를 지휘하다

돈바스 지역: 수감되었던 기독교인, 전쟁의 최전선에서 부활절 성가대를 지휘하다

돈바스 지역: 수감되었던 기독교인, 전쟁의 최전선에서 부활절 성가대를 지휘하다

부활절 예배에 참석한 일부 젊은이들은 예배당 맨 앞에 앉아 성가대를 지휘하는 노인이 누구인지 아마 몰랐을 것이다.

순교자의 소리Voice of the Martyrs Korea 현숙 폴리Hyun Sook Foley 대표는 그것이 바로 노인이 원하는 방식이라고 말한 

노인은 82세의 에브게니 푸쉬코프Evgeniy Pushkov, 교회는 우크라이나 도네츠크Donetsk 주의 하르치즈크Khartsyzsk 침례교회이. 에브게니 푸쉬코프가 애착을 갖고 있는 교회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최전선에서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로켓 포탄이 정기적으로 도시로 날아오지만, 주민들은 누가 어디에서 포탄인지 정확히 알지 못할 때도 있다.  

현숙 폴리 대표는 설명한다. 푸쉬코프 모스크바 인근의 기독교인 부모 슬하에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 기독교를 거부했고, 대신 전문 음악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밝힌 대로, 마르크스Marx 엥겔스Engels 레닌Lenin 면밀히 연구하면서 결국 기독교로 돌아오게 되었고, 1975 도네츠크주의 하르치즈크 도착하면서 새로운 꿈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노래를 잘한다는 사실을 발견 , 푸쉬코프는 하르치즈크 기독교 합창 사역을 시작하기로 결심 것입니다.” 

열심히 사역한 결과, 푸쉬코프는 1980년에 시작된 유배생활 3년과 수감생활 11년을 포함해, 42 동안 사역에 헌신해왔다 

코프는 하르치즈크 교회의 지도자였으나, 지금은 나이가 다른 명이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현숙 폴리 대표는 말한다. “푸쉬코프는 다리가 약해지고 있기 때문에 앉아서 성가대를 지휘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설교 요청을 으면 여전히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할 있다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푸쉬코프의 딸은 젊은 세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아버지 같은 신실한 기성세대의 신실한 성도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순교자의 소리에 말했. 그러나 푸쉬코프 본인은 노인들 사이에서도 겸손 허함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부활절 최대한 기쁜 날로 만드는 것이 부활절 찬양의 목표였다고 순교자의 소리에 말했다 

그것은 현재의 전쟁 상황에서 쉽게 이룰 있는 목표 아니었다. 한때 260명에서 280명까지 모였던 교회는 최근 출석 교인이 최근 150 이하로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러시아, 독일, 미국으로 피난을 떠났 많은 사람이 떠날 계획이다 

현숙 폴리 대표는 말한다. 교회가 당면한 문제는 아닙니다. 교회는 정부에 등록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지금까지 등록하지 않았습니. 성도들은 핍박 속에서도 교회 신실하게 섬깁니다. 1년도 되지 않아, 정부 리들이 극단주의 활동의 징후를 찾기 위해 교회 조사하기 시작했지만, 교회에 극단주의자의 활동이 없기 때문에 와서 조사하고 보고서만 쓰고 났습니다.”  

문제는 지역에서 무력 충돌이 현실로 일어나자 현재 시민들과 교회 성도들 그곳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프의 2 6 가운데 1명이 세상을 떠났고, 다른 자녀 4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났으며, 3명은 도시에 남아 있지만 각자 자신들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푸쉬코프는 손자의 보살핌을 받으며 손자 가족과 함께 기도 했지만 그들 지역을 떠났다. 푸쉬코프는 지금 혼자 살고 있지만 딸들 매일 찾아와 보살핀다. 푸쉬코프는 자신은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순교자의 소리에 말했다. 

처음 감옥에 갇혔을 때 3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에브게니 푸쉬코프. 그러나 그는 27일 후에 다시 체포되었다.

푸쉬코프는 자신과 같은 나이 사람은 곳이 없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 걱정으로 냅니다라고 현숙 폴리 대표는 말한다 

푸쉬코프는 자신의 주요 목표는 교회가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일 아침에 , 저녁에 예배를 드리고 주중 차례의 기도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 하나만을 위하여 살아 사람의 목표 치고는 단순한 목표이다  

현숙 폴리 대표는 설명한다. 푸쉬코프는 모스크바 교외 코브로프Kovrov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음악에 열정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던 푸쉬코프의 어머니는 그가 12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젊은 시절, 푸쉬코프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침례교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은 직업적인 음악가가 되려는 그의 꿈에 장애물이 되었다.    

시베리아 톰스크로 추방된 에브게니 푸쉬코프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에브게니 푸쉬코프(가운데)

현숙 폴리 대표는 말한다.푸쉬코프가 사라토프Saratov 음악학교 들어갔을 KGB 요원이 찾아와 그가 기독교 집안 출신임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협조하지 않으면 대학에서 쫓겨나게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푸쉬코프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청강생으로 졸업하는 방법이었다. 그렇지만 청강생도 공산주의와 무신론 관한 수업과제를 이수해야 했다. 하지만 과제가 푸쉬코프에게 뜻밖의 영향을 끼쳤다. 그가 과제를 하면서 기독교인이 었기 때문이었다 

현숙 폴리 대표는 설명한다. 푸쉬코프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관한 논문을 학교의 심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연구를 하던 푸쉬코프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30세까지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또한 푸쉬코프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신학에 관한 책들을 저술했지만 책들이 러시아어로 번역되지 않았고, 엥겔스가 인생 말년에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푸쉬코프는 논문을 쓰는 동안,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까워졌습니다. 무신론의 토대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분명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 엥겔스 물론이고 다른 어떤 유물론자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책을 권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푸쉬코프는 논문을 제출한 뒤에 음악학교를 졸업 있었다. 코프에 따르면, 이전에 그를 위협했던 KGB 요원 다시 찾아와 기독교로 개종 이유를 물었고, 이에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라고 대답했다 한다. 

푸쉬코프는 당시 상황을 순교자의 소리에 했다. 저는 요원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 마음에 약간의 믿음을 갖고 있었는데, 무신론자들이 우리가 사는 지역의 모든 공동체를 파괴해 주민 대부분이  감옥에 나머지는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저는 16 살에 이곳으로 공부하러 와서 하나님을 완전히 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완벽하게 반박하면서 모든 의문을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과학자들의 책이 있다 말을 당신과 같은 계통에 계신 분들에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책들을 세밀하게 구하기 시작했습니. 그리고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과학적 들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반박할 만한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뒤에 저는 요원과 사이좋게 헤어졌습니다. 요원이 저에 관한 모든 정보를 거주지로 보내겠다고 알려주었지만 말입니다.”  

에브게니 푸쉬코프(교인들 앞에 앉아 있는 노인)가 부활절 아침 하르치즈크 침례교회Khartsyzsk Baptist에서, 자신이 ‘남은자들’이라 일컫는 성가대를 지휘하고 있다.

에브게니 푸쉬코프(교인들 앞에 서 있는 노인)가 부활절 아침 하르치즈크 침례교회Khartsyzsk Baptist에서, 자신이 ‘남은자들’이라 일컫는 성가대를 지휘하고 있다.

코프는 26세의 나이에 사라토프 있는 교회에서 세례받았다. 그는 세속적인 음악가로 3 동안 일했지만 결국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오직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했다. 

푸쉬코프 이렇게 단한 뒤에 가장 먼저 어머니 묘소를 찾아간 것이었다고 말한다.   

저는 어머 묘소 아침 일찍 도착했어요.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죠. 어머니 무덤에 쓰러져 한참 다가 짖었습니다.어머니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제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주님을 양하는 그토록 원하셨잖아요. 어머니, 일어나세요 …. 이제껏 누구를 위해서도 하지 않은 연주를 어머니께 드릴게요.그러나 묘지가 놓인 언덕은 요했고, 늦은 후회로 마음은 무겁게 내려앉았습니.” 

현숙 폴리 대표는 그것이 때늦은 후회였기 때문에 푸쉬코프의 가슴에 깊이 사무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1975년에 하르치즈크 푸쉬코프는 그곳 주민들의 노래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푸쉬코프는 안수를 받은 복음전도자가 되었고, 공휴일이면 숲에서 지역 청소년 모임을 이끌었습니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3 수감 생활을 했고,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27만에 다시 체포되어 우랄 산맥의 강제수용소에서 5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후에도 그는 3 동안 시베리아로 유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국의 허락을 받자마자 하르치즈크 돌아왔고 결코 떠나지 않았습니.”  

현재, 전쟁으로 인해 많은 가족이 지역을 떠났다. 그러나 지난 부활절, 에브게니 코프는 피난을 가지 않은 성가대원 아니라 성가대에 번도 서보지 않은 주민들을 모아 성가대를 만들기로 했다.    

푸쉬코프는 그들을 성가대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단지 남은자이라고 부릅니다라고 현숙 폴리 대표는 말했다 

푸쉬코프의 남은자들 부활절 예배에서 곡을 찬양했다. 곡은 부활절 찬송가, 다른 곡은 회개를 격려하는 찬송가였다www.youtube.com 접속하면 가운데 곡을 들을 있다.  

현숙 폴리 대표는 성도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푸쉬코프에게 물었습니다. 랬더니 그는 껄껄 웃으면서, 찬양의 목표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성도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대답습니. 

순교자의 소리는 우크라이나 현지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사역을 지원하기 위해우크라이나 기독교인 긴급 구호 프로젝트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순교자의 소리는 그리스도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다 목숨을 잃은 우크라이나 기독교인의 가족들에게 ‘순교자 수감자 가정 지원 사역’ 기금에 들어온 헌금을 보내주는 사역도 하고 있습니다. 귀한 사역에 동역하고자 하시는 한국 교회나 성도님은 아래 방법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1. 한국 VOM 웹사이트: www.vomkorea.com/donation (납부 유형에서순교자 수감자 가정 지원 사역선택)                    
  2. 계좌이체: 국민은행 463501-01-243303 예금주: ()순교자의 소리 (본인 성명 옆에 ‘우크라이나혹은순교자라고 기입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일반 후원금으로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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