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오프라인 예배와 한국의 기독교 박해의 미래

온라인/오프라인 예배와 한국의 기독교 박해의 미래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9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라고 선언한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매어두려고 애쓰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것을 떨쳐낸다!

오늘날, 전 세계 70여 개 국가에 있는 정부는 말씀을 ‘매어두려고’ 시도하고 있다. 기독교를  노골적으로 금지하는 정부는 별로 없다. 대신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과 이념을 지지하는 훌륭한 시민정신을 가진 종교로 기독교를 개조하려고 애쓴다.

정부가 하나님의 말씀을 매어두려고 시도할 때, 아래와 같은 전형적인 순서로 통제를 확대한다.

  1. 교회가 사용할 수 있는 집회 장소 통제. “여기서는 설교해도 되지만 거기에서는 안 된다.”
  2. 교회의 메시지 통제. “이런 설교는 해도 되지만 저런 설교는 안 된다.”
  3. 교회를 구성하는 교인들 통제. “이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해도 되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안 된다.”
  4. 교회의 사역자 통제. “이 사역자는 설교해도 되지만 저 사역자는 안 된다.”

이런 통제 방식이 여기 한국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러시아의 경우, 정부에서 인가한 교회의 집회 장소 외에서 전도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유럽에서는 ‘증오 발언 금지법“ hate speech” laws (특정 인종이나 국적, 종교, 성별을 기준으로 타인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발언을 금지하는 법안)’으로 인해, 결혼에 관한 전통적인 기독교  메시지가 범죄 취급을 당하고 있다. 대부분의 중동 국가에서는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이들이 교회의 교인들이 될 경우, 감옥에 가거나 살해당한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만 기독교 사역자로 섬길 수 있다.

로마서 13장 1절에서 바울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매어두려고 애쓰는 정부 지도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설교하라고 명령하신 곳 어디에서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한 사람 누구에게라도,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또한 정부가 말씀을 전하는 우리의 “권리”를 인정하든지 안 하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반드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어두려는 정부의 노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정부가 부과하는 벌금과 처벌을 언제나 달게 받아야 한다. 언제나 담대하게 말씀을 전해야 하지만, 그로 인해 감옥에 갈지라도, 조용히 심지어 기쁨으로 가야 한다. 전 세계에 순교자의 소리(Voice of the Martyrs)를 세운 리처드 웜브란트(Richard Wurmbrand) 목사는 자신을 감옥에 가둔 루마니아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교도관들과 우리는 타협을 보았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면 그들은 우리를 때렸다. 이런 식으로 양쪽 모두 만족했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 교회는 “여기서는(온라인으로는) 설교해도 되지만 저기서는(오프라인으로는) 안 된다”라는 정부의 지침을 받았다. 일부 교회는 로마서 13장 1절을 인용하거나, 대중의 건강을 고려한다는 이유를 대거나, 이웃 사랑을 내세워 그 지침을 따랐다. 또 어떤 교회들은 모이기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히브리서 10장 25절의 명령을 인용하거나, 대중의 중보기도와 회개를 이끄는 교회의 본질적 역할을 지적하면서 ‘오프라인’으로 계속 모이고 있다. 이들은 교회는 항상, 심지어 국가 비상 사태 동안에도 계속 모여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어느 쪽이 옳은가? 디모데후서 2장 9절의 관점에 비추어보면, 양쪽 모두 겸손하게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온라인 예배만이 합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경우에는, 정부가 하나님의 말씀을 매어두는 것을 교회가 허용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정부의 요구가 타당하고 급하고 공적인 것이라도 말이다. 성경에는 당국의 직접적인 명령에 위배되는 때와 장소에서 말씀을 전파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종들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성전에서 복음을 전한 베드로와 요한의 이야기가 한 예이다(참조, 행 3-5장). 때로 하나님은 복음을 전했다가는 폭동이 일어날 게 뻔한 곳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에베소와 예루살렘에서 바울에게 일어난 사건이 한 예이다(참조, 행 19장, 21-22장). 예레미야서 38장에 기록된 대로, 심지어 하나님은 전쟁 중에 사람들의 사기를 꺾어놓는 식으로 말씀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기도 하신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2절에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디모데에게 권면한다. “때를 못 얻든지”로 번역된 헬라어는 ‘가장 안 좋은 때’를 뜻한다. 핵심은 정부나 대중이나 교인들과 협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매어두기로 합의하는 것이 신중해 보이고, 국가 안보와 공중 위생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보여도, 우리에게는 그렇게 합의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도 ‘오프라인’ 예배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경우에는, 하나님 말씀이 특정 건물이나 교회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똑같이 중요하다. 하나님 말씀은 건물이라는 한계와 종교 전통이라는 한계를 벗어나므로, 진실한 예배자들은 영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참조, 요 4:23).  성경은 그러한 하나님 말씀의 이야기이다. 사도행전 8장에서 하나님은 교회를 뒤흔들어 항상 모여왔던 장소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박해를 일으키셨고, 결국 그 박해때문에 복음이 전해질 수 없었던 곳에도 복음이 전파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한국 교회의 교인 숫자가 감소하는 현상을 고려해볼 때, 주님께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한국 정부를 이용하여 사도행전 8장에서처럼 한국 교회를 뒤흔들어 우리를 예배당 밖으로 내보내시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확신과 가장 철저하게 지키는 전통에 항상 도전한다. 특히 위기가 오면 더 그렇다. 주님께서는 이사야서 55장 8절에서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라고 단언하신다. 말씀의 주인이 아니라 종으로서, 우리는 정부의 경고나 여론의 압력이나 교인들이 좋아하는 것이나 개인적 우려를 출발점으로 삼으면 안 된다. 대신 “예수님, 지금 이 시간에 우리 가운데 누가, 무엇을, 어디에서, 누구에게 설교하기 원하십니까?”라고 언제나 질문해야 한다.

현재 온라인/오프라인 예배에 대한 논쟁이 교회를 사로잡고 있지만, 그리스도에게는 그런 질문이 교회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위에서 열거한 정부가 기독교를 통제하는 확대 과정을 염두에 두면서, 중국에 대해 생각해보자. 중국의 경우,  박해가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도 정부가 교회의 온라인 집회와 오프라인 집회를 폐쇄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온라인 집회와 오프라인 집회가 ‘강대상 중심’ 즉,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교회를 지휘하고 말씀을 전하는 이가 목회자이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 교회 가운데서도 ‘강대상 중심’이 아닌 ‘가정 중심’의 교회들이 있는데, 이 교회들은 지속적인 성장을 해왔다.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시간, 돈, 에너지를 모두 쏟아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자신들의 교인들에게 계속 훈련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정 중심’의 교회는 정부 당국자들이 폐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목회자가 감옥에 갇혀도 가정은 계속 기능하기 때문이고, 가정의 지도자가 감옥에 갇히더라도 다른 식구가 사역을 계속해 나가기 때문이다. 또한 자료를 보면, 정부가 기독교에 매우 적대적이어서 교회들이 ‘가정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가들에서 교회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 ‘가정 중심’ 모델을 채택하라고 한국 교회에 촉구하기 위해 현재의 난관을 사용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주님께서 ‘가정 중심’ 모델을 채택하라고 한국 교회에 촉구하신 까닭은, 이제 한국 정부가 교회의 집회 장소뿐 아니라 교회의 메시지까지도 더 확대하여 통제할 것임을 아셨기 때문은 아닐까?

이 중대한 시기에  주님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여러교회들이 각각 다른 반응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실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고려해야 한다. 농업의 경우, 생물학적으로 변형된 옥수수 단 한 알갱이나 쌀 단 한 톨이 어떤 나라에 심어진다면, 작물 하나가 오염됨으로 인해 작물 전체와 그 나라의 식량 공급 전체가 파괴될 위험에 빠진다. 그러나 다양한 변종의 씨앗을 심는 경우, 작물이 훨씬 더 강해지고 내성이 생겨 잘 파괴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지금 어떤 교회는 이 시기에 철두철미하게 변화되도록 인도하는 동시에, 다른 교회는 사방에서 압박을 받아도 변함없이  굳건하게 서 있으라고 인도하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인 된 처지로 다른 하인을 판단하지 말고, 그 대신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각에게 주신 임무를 온전히 마음에 두라고 권고한  바울의 로마서 14장 4절과 5절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심지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서로 다른 반응을 하라고 부르셨을 때에도우리는 사랑과 존경심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실제적인 한 가지 방법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성행하는 동안, 그들의 양심에 따라 결정한 예배방식때문에 지금 고통받고 있는 교회들을 돕는 것이다.  그 교회가 여러분 교회와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도 말이다. 일례로, 온라인 예배를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확신으로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면, 이 교회는 헌금 감소로 지금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오프라인으로 예배를 드려 헌금을 많이 확보한 교회가 온라인 예배로 재정이 어려운 교회에 지원금을 보내줘야 한다. 반대로, 계속적인 오프라인 예배때문에 정부에게 벌금을 부과받은 교회가 있다면, 온라인으로 예배드린 교회가 이 벌금을 함께 분담해 주어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는 공통된 방법이 아니라 공통된 확신을 가지고 연합된 하나의 몸을 이룬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다.

목사이며 박사인 에릭 폴리(Eric Foley)는 한국 VOM(Voice of the Martyrs Korea)의 CEO이며, 지하교회시리즈 세 권(『지하교회를 준비하라Preparing for the Underground Church』, 『지하교회를 심으라Planting the Underground Church』, 『지하교회로 살라Living in the Underground Church』)의 저자이다. 이 시리즈물에서 그는 한국 교회가 점점 더 커지는 핍박에 어떻게 대비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권고한다. 한국 VOM 사무실로 전화하거나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그 책을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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