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은 때로 러시아 민족의 정체성을 ‘러시아의 영혼’이라고 한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이 나라에서 기독교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기독교는 루터의 95개 조 반박문이 등장하기 6백 년 전에 러시아에 전파되었고 나중에는 정교회 Orthodox가 러시아의 국교가 되었다. 그런 상황이 1917년까지 이어졌으며 그 기간에 정교회는 러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다른 기독교 교파는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금지되거나 제한되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에 상황은 급변했다. 유물론적 무신론을 유일한 진리로 선언한 마르크스-레닌주의 Marxism-Leninism의 새로운 이념으로 인해 모든 종교가 금지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교회를 비롯한 종교적인 건물을 파괴했고, 종교 지도자들을 처형하거나 추방하거나 노동 수용소에 보냈다. 학교와 언론에는 반종교적 가르침이 넘쳐났고 ‘과학적 무신론’이라는 신념 체계가 도입되었다. 소식통에 따르면, 소련 통치하에서 희생된 기독교인의 수는 1천2백만에서 2천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소련 당국은 광범위한 반종교 선전 운동을 펼쳤다. 특히 복음주의와 침례교 신자들에게 반대했다. 지금도 ‘침례교 신자’라는 말을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러시아인이 많다. 공산주의는 성경적 신앙의 징후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가혹하게 핍박했다. 일부 반종교 선전 운동은 극렬했으나 1980년대에 미하일 고르바초프 Mikhail Gorbachev가 권력을 잡으면서 소련은 사회, 정치, 경제, 종교적 ‘해빙기’를 맞았다. 소련이 사회,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지면서 많은 교회가 국가에 빼앗겼던 예배당을 돌려받았고 지역 교회 신자들이 예배당을 재건했다. 마침내 지하교회도 조심스럽게 표면으로 떠올랐고 러시아 정교회도 다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 뒤에 과도기가 이어지면서 모든 교파의 교회들이 비교적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1997년부터 ‘교파’에 대한 법률이 점차 강화되어 정교회를 제외한 모든 기독교 단체가 불법이 되었다. 법에 근거한 규제 조치와 법원에 기소된 사건들(지난 12개월 동안 발생한 기소 사건 159건이 포함된다. 이 사건들에 관한 통계를 확인할 수 있다)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