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신 특집】 제3부. 일본은 왜 한국 교회보다 김교신을 더 두려워했는가?

【김교신 특집】 제3부. 일본은 왜 한국 교회보다 김교신을 더 두려워했는가?

【김교신 특집】 제3부. 일본은 왜 한국 교회보다 김교신을 더 두려워했는가?

제3부. 일본은 왜 한국 교회보다 김교신을 더 두려워했는가

【김교신은 누구인가?】

김교신 선생은 오늘날 한국과 전 세계가 귀 기울여야 할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교자 중 한 사람으로, 이 글은 폴리현숙 박사(한국 순교자의 소리 회장)가 그에 관해 쓴 특집 소론(小論)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인구 중 25%가 기독교인으로 아시아에서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나라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말은 나머지 75%의 인구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뜻이자, 가장 독실한 한국 기독교인들(매일 새벽기도에 가고 십일조를 하며 교회에서 봉사하는 교인들)이 한국 사회에 깊이 있는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와 같다. 과연 이대로 괜찮을 것인가?

김교신은 이 질문에 아니라고 답했다. 그는 가장 존경받는 한국 초기 기독교인 중 한 명이었다. 열린 마음으로 그의 글을 다시 읽어보면, 그가 한국 교회를 공격하거나 배척하는 데 집중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교회나 교단에 집중되어 있던 시선을 돌려 조선 땅의 모든 이에게 성경을 전하는 일이 조선 기독교인들의 부르심이라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그저 많은 교회를 세우거나 많은 한국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이상(理想)이 있었다. 그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다름 아닌 ‘성경에 기초한 새로운 조선을 세우는 일’이었다(서, 2005, 456). 그는 교회 개척과 교단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우려했다. 교회 개척과 교세 확장이 목표를 이루는 데 있어 중요한 방법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그로 인해 목표에서 멀어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조선 교회는 그들이 이 땅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말하곤 했다. 단지 죽은 뒤 천국 가는 것에 대한 말이 아니라, 금주 운동, 과부 재혼 금지령 철폐, 사회생활 개혁을 부르짖고, 일부일처제 지지를 분명히 하며, 농촌 산업에 몸 바쳤으며, 조국의 미래를 제시하며, 문맹을 없애고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주일학교와 야학에서 한글을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큰 사업이 진행 중이든 간에 그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제 이러한 것을 잊고 천국 가는 일을 이야기한다. 누구도 기독교인들이 해온 일을 부정하거나 그들의 성과를 칭찬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믿는 나의 목표는 오로지 천국 가는 일이다.

그밖에 다른 일들은 계몽 단체나 [동아일보의] ‘나로드(Narod, 민중)’ 운동 등 다른 조직들이 더 잘 할 수 있다. 민족의식을 일으키는 일에서는 보천교나 천도교가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죄인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일은 오직 예수님의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김교신, 웰즈(Wells), 2009, 71).

이는 김교신이 국가를 위한 일로부터 물러나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에 관해 웰즈는 “‘조선’과 ‘성경’은 이인일체(二人一體), 즉 한 몸 안에 깃든 두 인격으로 인식되어야 했다. 민족의 역사는 민족 영혼을 보여주며, 민족 발전의 핵심은 신의 섭리에 있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2009, 71). 김교신은 교회 성장 이상의 것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조선 민족의 영적이고도 윤리적인 개조였다.

훗날 월간「성서조선」 158개 호 전편을 모아 총 7권의 김교신 전집으로 엮은 노평구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그의 애국심은 남달랐다. 그는 한국인들의 영적이고도 윤리적인 개조를 목표로 삼았고, 이는 곧 종교나 윤리를 통해 나라를 다시 세우는 일을 뜻했다.”(김, 2012, 178). 실제로 김교신의 이상(理想)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향한 것이었다.

김교신은 지(知), 정(淸), 의(意)라는 한국적 덕목을 믿음, 소망, 자비라는 기독교적 덕목과 결부시켰고, 이를 온 세상에 알리는 것이 한국의 사명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한국 외부에서 주입된 것은 무엇이든 수용하길 거부했고 한국과 성경의 완전한 융합을 주장하는 동시에, 이 같은 한국식 형태를 전 세계에 전하라고 한국인들에게 호소했다(웰즈, 2009, 71-72).

조선이 온 세계로 뻗어 나갈 운명을 지녔다는 사상은 일본에는 걸맞지 않은 것이었다. 서종민은 일본인들이 “다른 어떤 독립운동이나 민족주의보다 김교신식 신앙 운동을 더욱 두려워했다.”고 말한다(2005, 457). 한국 교회는 이를 알지 못했지만, 일본은 김교신이 목표로 삼고 있는 바가 한국 교회가 지닌 이상(理想)보다 훨씬 더 원대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결국, 일본은 그가 월간지에 실었던 글 한 편을 구실로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판매 부수가 겨우 350권에 지나지 않는 잡지였는데도 말이다(웰스, 2001, 155). 한국 교회도 김교신을 배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교신이 자기 자신의 이상(理想) 때문에 교회를 거부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김교신이 일본 당국과 한국 교회 모두에게 그토록 위협적이었는가를 이해하려면, 그가 지닌 사상이 비롯된 신학 및 역사적 뿌리를 먼저 이해하는 편이 유익하다. 이는 곧 무교회주의를 처음 주장한 사람이자 김교신의 스승이었던 일본인 우치무라 간조를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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