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는 기독교인이 얼마나 있을까?
북한에는 기독교인이 얼마나 있을까?
FAQ
일반적으로, 북한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질문들은 대답하기 가장 어려운 질문들이다. 일반 대중에게뿐 아니라 북한 분석가들과 정보기관들에도 그렇다. 오랜 시간, 북한은 ‘첩보 계의 실패작’이라 불려왔다. 왜냐하면, 김일성 사망 같은 주요 사건들조차 북한이 발표하기로 할 때까지는 종종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정보기관들이 발표하는 북한에 관한 정보가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판명될 때가 있다.
“북한 인구가 몇 명인가?”라는 질문조차도 조심스럽게 지켜지는 국가기밀이다. 보통 주어지는 대답은 “2천만 명에서 2천5백만 명 사이이다.”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모호한 수치인가!
하물며 그 인구 중 일부, 특히 드러나지 않은 채 깊이 숨겨진 무리에 관해 정확히 규정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지하교인들은 북한 정부에게뿐 아니라 그들의 이웃, 직장 동료, 심지어 가족에게도 발각되지 말아야 한다. (이 점에 관하여는 나의 책, 『믿음의 세대들(These are The Generations)』에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북한의 3세대 지하교인의 간증이다. 3세대 기독교인인 배 씨가 그의 부인과 결혼할 때 배 씨 부인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북한 학교의 윤리 교사로, 북한 주민 모두가 반드시 암송해야 하는 김일성의 생애 100가지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나의 책에서 배 씨 부부는 배 씨 부인이 놀라운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알게 된 이야기를 전한다.)
북한의 지하교인들은 자녀들이 15살이 될 때까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북한 학교의 교사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가족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무심코 드러내게 유도하는 책임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혹시 너희 부모님이 특별한 책을 집에 숨겨놓았니? 우리가 학교에서 부르는 노래와는 다른 노래를 부르니?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고 중얼거리니?”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가족들을 (자신도 포함해서) 결국 강제수용소에 보내게 된 자녀들이 적지 않다.
폴리 박사와 나는 이러한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하는 이야기를 북한의 한 여성에게서 들었다. 그녀는 지하교인 가정에서 자란 여성이었다. 그녀가 일곱 살쯤이었을 때 집에서 성경책 한 권을 발견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다. 지하교회 지도자들이던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밖에 나가지 못하게 의자에 묶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고, 그녀는 밀고자가 아닌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교회 지도자가 되었다.)
이렇게 비밀이 철저히 엄수되는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한의 기독교인 숫자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다행히도, 대답은 ‘그렇다’이다. 다음은 그에 관한 몇 가지 이유이다.
첫째, 북한 지하교인들은 보통 교회 생활에 대한 상세한 구술기록을 보존하고 있다. 많은 교인이 북한에 처음 복음이 전파되던 그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 자신들에게 남겨진 신앙의 유산을 추적할 수 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이 어느 교파에 속한지도 알고 있다. 교파적 구분이 북한 교인들에 의해 관례화되거나 유지되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이 구전 역사를 통해 북한 내의 기독교 전파, 핍박, 지역교회의 현황 같은 자료가 복원될 수 있다. (보통, 북한 교인들은 자신의 마을 밖에 존재하는 교회의 상황은 알지 못한다. 그들은 특별한 허가 없이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여행할 수 없으며, 북한의 교회는 특정 장소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매우 분산되어 있다.)
둘째, 현재 남한의 탈북자는 3만 명 이상이다. 우리가 직접 조사하고 경험하여 확인된 연구 연구에 따르면, 남한에 거주하는 탈북자 45% 이상이 매달 북한 내 친척들과 연락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남한의 많은 기독교 사역자와 교회는 탈북자들과 친밀한 신뢰 관계를 쌓지 않는다. 이 때문에 탈북자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에 대해 그들과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순교자의 소리(VOM Korea) 같은 단체는 15년 이상 탈북자들과 신뢰 관계를 구축하여 사역의 밑거름으로 삼는다. 그 결과, 우리는 북한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한 풍부한 정보 소식통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지난 몇 년 동안 북한의 현재 기독교 상황을 정확히 관측하고 예측할 수 있게 해주었다.
셋째, 접근할 수 있는 정보들이 전보다 더 많다. 통일부는 다른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종교 생활을 포함한 북한 내부의 생활에 관하여 자체적으로 조사한다. 또한, 여전히 북한 시민이지만 북한 정부가 배당한 해외 부서에서 일하거나,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중국에 불법체류 하는 사람들이 수십만 명 있다. 이런 사실 때문에 북한 주민의 삶과 관련된 믿을 만한 자료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종합적으로 보건대, 이 연구들은 북한 내 종교 생활 현황에 대한 매우 상세하고 믿을 만한 개요를 그려내며, 이를 통해 분석가들은 북한의 기독교인 숫자를 측정할 수 있다.
이러한 자료들이 주어져도, 당신은 북한의 기독교인 숫자에 대한 추정치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기독교 단체들은 기독교인이 북한 인구의 10%, 즉 2백만명 가량이나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관, 즉 국정원부터 인권 단체, 한국 순교자의 소리를 포함한 기독교 사역 단체와 같은 기관들은 보통 북한의 실제 기독교인 숫자를 십만 명가량으로 추산하고, 그중 3만 명이 노동교화소에 구금되어 있다고 본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연구, 다른 믿을 만한 단체와 자료 수집 기관들의 연구, 그리고 다른 집단과 우리 단체의 공통적인 경험으로 볼 때, 우리는 북한의 기독교인 총수가 적게는 6만 명에서 많게는 12만 명일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집단은 왜 2백만 명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말하는가?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렇게 주장하는 단체들은 보통 자신들의 자료를 다른 단체들의 자료와 통합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은 매우 적은 양의 자료, 예를 들어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따라 거주하는 기독교인 숫자, 또는 외부와 접촉이 잦고 북한 주민들이 일을 하는 지역의 기독교인 비율 만을 바탕으로 추정하며, 이것은 우리가 보기에 매우 과대 추정한 결과이다. 이는 코끼리의 신체 부위만 만져보고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애쓰는 소경들 이야기와 같다. 그들이 만져본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면 많은 소경이 힘을 합쳐야 한다. 마찬가지로, 정확한 추정치를 내려면 많은 단체와 연구원들이 협력해서 일하고 자료를 공유해야 한다. 여러 단체가 협력해서 일하고 가능한 한 정보를 공유하며 상대방의 견해를 겸손하게 경청할 때보다, 오직 자신의 자료를 근거로 한 추정치는 정확성이 훨씬 떨어진다.
북한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인구 통계적으로 더 다양한 나라이다. 어떤 기독교인은 부유하다. 어떤 기독교인은 가난하다. 어떤 기독교인은 중국과의 국경에 산다. 어떤 기독교인은 평양에 산다. 어떤 기독교인은 바닷가에 산다. 어떤 마을에서는 기독교인의 영향력이 강한 반면 다른 마을에서는 약하다. 가능한 한 정확한 정보를 구성하려면 모든 단체가 협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 정보는 새로운 자료를 입수하는 대로 매달 새롭게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아쉽게도, 몇몇 단체들은 다른 단체들과 잘 협조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의 자료와 견해는 다른 단체들만큼 정확하지 않다.
둘째, 어떤 기독교 단체들은 실제 북한 기독교인과 기독교인 행세를 하는 북한 간첩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정보기관들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에서 선교사들을 만나는 북한인 90% 이상이 간첩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선교단체에 잠입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돈과 물자를 북한으로 끌어들일 목적으로 북한 정부에게 특별히 훈련받고 파견되었다. 만일 어떤 단체가 실제 북한 기독교인, 기독교 신앙을 찾는 사람, 그리고 이 둘을 흉내 내기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간첩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면, 북한에 실제보다 더 많은 기독교인이 있다고 추산할 것이다. 만약 선교 기지를 방문하는 북한인 90%가 간첩이라면, 그들의 추정치는 기독교인과 간첩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고 실제로 구별하는 단체의 추정치보다 당연히 90%가 높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그래서 어떤 단체들은 북한의 기독교인이 2백만 명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북한의 기독교인이 10만 명이고, 간첩 숫자가 훨씬 더 많다고 말한다.
셋째, 북한의 기독교인 숫자는 명확하게 고정된 수치가 아니다. 많게는 북한의 기독교인 3분의 1이 노동교화소에 있다는 점과 노동교화소 생활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여, 기독교인의 숫자를 균등하게 유지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기독교인의 숫자를 상상해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추산하든지 상관없이, 모든 지표는 북한에서 기독교가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이적이고 기하급수적인 이 성장률이 고정적인 기독교 인구 수준을 유지하긴 힘들 것이다.
넷째, 누구를 기독교인으로 간주하느냐 하는 질문조차도 논란이 되는 문제이다. 나는 얼마 전 나의 책, 『믿음의 세대들(These are The Generations)』의 평론을 읽었는데, 그 평론가는 책이 좋았지만 (다른 번역: 그 평론가가 말하길 책은 좋았지만) 배 씨 부부가 과연 기독교인들인지 궁금하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책에서 배 씨 부부는 서양의 복음주의 신자들이 그들의 믿음을 묘사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를 쓰지 않는다.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 ‘거듭남’,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 등과 같은 표현 말이다.
남한의 어떤 기독교 지도자들은 북한에 기독교인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로 논쟁한다. 목사도, 예배당도, 가족 외의 정기적인 모임도 없는 등 북한의 기독교가 한국의 기독교와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친애하는 벗이자 사역 협력자이며 『Dreams and Visions(꿈과 환상)』 외 다수의 책을 저술한 톰 도일(Tom Doyle) 목사는, 중동의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죽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진짜 기독교인인지 의심하는 사람이 자신의 교회에 있었다고 말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톰 목사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전화했다. 그 교인은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심해서 못 갔어요.”
다른 나라의 기독교가 진짜 기독교인지 판단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아주 쉬울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진 문화적 편견은 다른 나라 신자들의 온전한 헌신과 우리의 미지근한 신앙을 보지 못하게 한다. 한국 순교자의 소리는 니케아 신경(Nicene Creed)을 지지하는 모든 이들과 기독교적 동지애를 나눈다. 다른 집단들은 니케아 신경이 진짜 기독교를 판단하는데 부적절한 기준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그 문제를 맡기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다른 이들이 알도록 우리의 기준을 단지 솔직하게 진술할 뿐이다.
나는 이렇게 결론을 맺고 싶다. “북한에 기독교인이 몇 명이 있든지, 당신이 기독교를 어떻게 정의하든지, 당신은 북한의 지하교인들이 어디에서나 하나님께 신실하도록, 그리고 당신 자신도 어디에서나 하나님께 신실하도록 그들과 함께 기도할 수 있다”라고 말이다. 북한에 기독교인이 몇 명이 있는지 우리가 확실히 모른다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나라에 진정한 기독교인이 몇 명인지 확실하게 모른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교회가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북한의 지하 교회 및 세계 곳곳의 지하 교회가 전 세계의 교회를 되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는다. 북한, 미국, 한국의 기독교인이 몇 명이든지, 내일은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아는 우리가 오늘보다 내일 더 헌신하기를 소망한다.
The North Korea-South Korea Summit and the Panmunjom Declaration
: Let’s Wait To Hear From North Korean Christians
Voice of the Martyrs Korea is built on this fundamental principle: When seeking to understand and interpret matters related to North Korean Christians, it is best to ask North Korean Christians. In fact, we believe that before we pray for or help North Korean Christians, we should seek to learn from them–not only about North Korea, but also about how each of us can be more faithful Christians where God has placed us.
This is the best counsel I can give regarding questions about the impact of Friday’s North/South Summit on North Korean Christians. It can certainly seem challenging and time-consuming to find a North Korean Christian to ask about such matters. The voices and opinions of government leaders, reporters, media commentators, and North Korean analysts are more readily at hand. I noted no shortage of Christians around the world borrowing phrases from Kim Jong Un and Moon Jae In themselves to hail the summit as the dawning of a divine new day. I saw Facebook posts over the weekend from Christians overflowing with emotion as they described the events of the summit as God’s answer to their own years of prayer–a “kairos” moment the likes of which we have not previously seen.
And yet I believe that one thing Christians around the world can do in moments like these, rather than rushing to share our own thoughts and opinions and those of others, is to remind the world–and each other–that North Korean Christians are real, and are one body with us, and are God’s main spiritual provision for North Korea, and are aware of most of the events that you and I are seeing, and have perspectives which they are willing to share from which we fellow Christians can learn much.
Remember, for example, that between 60 and 80 percent of North Korean defectors maintain regular monthly contact with their relatives inside of North Korea, and that North Koreans have developed durable and reliable systems of information transmissions that allow news about current events to travel more rapidly than we might imagine. It perhaps makes for a less dramatic Facebook post to say, “Let’s wait to hear from North Korean Christians about this summit,” but it is possible that such an effort to hold a space for those who rarely are given the microphone can accomplish more than our own tearfully hopeful ruminations.
And likely something of Hebrews 13:3 is operative in such waiting behavior: “Continue to remember those in prison as if you were together with them in prison, and those who are mistreated as if you yourselves were suffering.” Reminding the world that we should wait to hear from them is one of the concrete and practical ways we can remember the persecuted.
As we await their comments, we can read carefully what is being written and shared by secular commentators, comparing it to what we have already learned from North Korean Christians. Is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 the peace for which North Korean Christians have taught us to pray? No, it is not.
And that is not because North Korean Christians are naive or provincial or impractical or idealistic. It is because North Korean Christians have reminded us that the “North Korea situation” is only secondarily political but primarily spiritual in nature. It is about national captivity and subservience to evil, of which nuclear weapons are only symptomatic. Addressing symptoms often leads to overlooking root causes. The root cause here is the North Korean government’s redefinition of what it means to be human–not as “one created in the image of God”, but rather as “one useful and loyal to the Kim family”.
Many Christians around the world seemed to see in the events of the summit generational spiritual strongholds broken, and North Korea and Kim Jong Un somehow set free for new thoughts and actions in service to God. But we in the free world are always woefully naive about the depth, nature, intransigence, and remarkably deceptive character of evil. We need our brothers and sisters from persecuted countries to remind us what evil is really like, since they are the ones daily seared by its lash. It is not that they are somehow too jaded, too burnt out, too close to the situation to hope rightly. In fact, it is because they know the evil we are dealing with that they also can know real hope when they see it. And they can teach us to distinguish real hope from counterfeit, and to wait on the Lord who rarely works on human timetables or through media spectacles.
The North Korean Christians with whom I communicated over the weekend were surprised that Christians around the world were quick to receive what Kim Jong Un and Moon Jae In were sharing as something new. Were we even to review the previous North/South summits, we would see nearly identical sentiments, wording. proposals, and even photos and special meals put forward. Consider, for example, this 1991 New York Times report from the first inter-Korean summit:
Leaders of North and South Korea signed a treaty of reconciliation and nonaggression this morning, renouncing armed force against each other and saying that they would formally bring the Korean War to an end 38 years after the fighting ceased.
The agreement would also re-establish some measure of regular communica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including telephone lines, mail, some economic exchanges and the reunion of some families who have been separated since war broke out in 1950. It would also commit the countries to rebuilding railway and road links across the heavily guarded border, known as the Demilitarized Zone, which has been the symbol of the armed division of the country for almost four decades.
Officials on both sides described the accord as the first step toward what they term the inevitable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Lee Dong Bok, South Korea’s chief spokesman, termed the agreement “a historical milestone and an evolution in inter-Korean relations.”
In the accord, the two sides agreed to forswear all acts of terrorism or any efforts to overthrow the government of the other.
In his speech at the summit, Kim Jong Un talked about a new day but said that new day would come about “by thoroughly carrying out all preexisting North-South declarations and agreements.” The one subject omitted from all preexisting declarations and agreements, as well as the new Panmunjom Declaration, is Kim Jong Un’s war against his own people. North Korea has long been willing to talk about peace to its north, south, east, and west, but what it considers as matters inside its own house it always has–and continues to–view as off-limits not only for negotiation but even for mention. Christians around the world may think that it is a natural progression for North Korea to move from nuclear talks to human rights ones, but this is only because Christians around the world do not know North Korean very well.
Even the small and infrequent mentions of human rights by the US in the present summit lead-up have caused North Korea to, in its words, doubt the US’ sincerity. Talking about the mistreatment of ordinary North Koreans by the North Korean government is in North Korea’s words like “pouring cold water” on the warm feelings generated by Friday’s summit. Please, in other words, focus on the projectiles we have pointed at you, not at those we use daily to gore our own people.
Such insights need not turn us into political commentators, but they should remind us how North Korean Christians have taught us to pray about North Korea, namely, that Kim Jong Un would meet the Lord Jesus and be transformed by him. This kind of talk is quickly dismissed by political commentators but should not be so quickly dismissed by Christians. Yes, God uses nations to discipline, reward, and punish other nations. But his actions and interests cannot be reduced to such matters. He is consistently portrayed in scripture as relentlessly focused on the heart of the leader. How can we students of scripture be so easily distracted from that in our prayers for the nations and their leaders, especially North Korea, the US, and South Korea?
And this is perhaps the greatest danger of the present moment: Like King Saul impatiently making sacrifice rather than waiting for Samuel to do so, we Christians are surprisingly willing to sacrifice what we have learned from North Korean Christians–and from the scriptures themselves–because we really would like to believe that our prayers are being answered in front of our eyes. We wipe away our tears and think about how we have prayed for several years for a breakthrough in North Korea, and we embrace Kim Jong Un and Moon Jae In for seemingly offering one.
But for North Korean underground Christians who have prayed for the coming of the Kingdom for more than one hundred years, beginning with the Japanese occupation and continuing through three generations of Kims, they have learned to be more patient and selective about the Kingdom for which they are praying. Having been trained by suffering, they will be far less likely to be deceived and far more likely to recognize the true Kingdom when it comes. Let us wait on their thoughts, counsel, and positive identification.
Among the North Korean Christians to whom we have spoken this weekend, their preliminary response to the Panmunjom Declaration has not been as optimistic as that of their brothers and sisters around the world. I think that ought to lead us to examine our own hearts and the content of our own prayers and the images we treasure of what we think the Kingdom will be like when it comes, and it should lead us to repent, and to redouble our efforts to learn from North Korean Christians, about North Korea if nothing else.
Here in Seoul we are digging in for a long summer. Attempts have been made to recruit some of our own constituents to spy on us. There are rumors daily about which of our ministry programs–balloons, radio, discipleship bases, North Korean defector missionary training–will and will not be targeted for constraint as the South Korean government seeks to carry out its promise in the Panmunjom Declaration to “completely cease all the hostile acts against each other in every domain including land, air and sea.” Broadcasting and balloons have consistently been described by North Korea as hostile acts, and we have already seen stormy weather emerging on both horizons.
Yet we have learned from North Korean Christians not to worry but instead to view all things as gifts from the hand of our God. New ministries are always emerging from whatever limitations are enforced upon us, along with new opportunities to participate in the suffering love of the Lord Jesus Christ for Korean people wherever they are found. Our gospel skunkworks has always been active, and it remains so. We may not be able yet to share openly what we are doing and planning, but rest assured that we spend little time, energy, or money protesting or worrying and a lot of time, energy, and money partnering with the North Korean church to reach North Koreans with the gospel today and everywhere.
The Panmunjom Declaration neither advances nor retards that. We neither celebrate it or mourn it. Instead, we have learned from North Korean Christians to stay focused on the kind of peace and freedom that governments cannot grant, withhold, or achieve. North Korean underground believers have lived in that peace and freedom in Christ for more than a hundred years, and they are willing to teach the rest of us how it’s done. We must just be willing to wait to hear their voice, and his, and to learn with humble and patient spirits that transcend the latest made-for-Internet media cy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