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목사의 ‘평범한’ 제자

한 목사의 ‘평범한’ 제자

한충렬 목사는 중국 장백Changbai에 있는 교회의 목회자이자 한국 순교자의 소리Voice of the Martyrs Korea의 오랜 동역자로,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건너오는 북한 주민을 전도하여 제자로 양육하고 생필품을 공급해주었다. 그러던 2016년 4월 30일, 한 목사는 어떤 북한 사람의 전화를 받은 뒤, 자신의 차 안에서 여러 군데 칼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되었다. 북한 국가 안전 보위부 요원들이 한충렬 목사를 납치하여 살해한 뒤, 시신을 방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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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사는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중국 장백에 있는 북한 주민들을 계속 돕기로 결단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그릇입니다. 작은 그릇이 되지 말고 큰 그릇이 되어 크게 쓰임 받으세요.”

 

한 목사는 남한으로의 탈북을 고려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만난 김 선생은 한 목사에게 바로 그런 말을 들은 탈북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한 목사는 북한 주민들이 한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평생 헌신했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된 북한 주민이 예수님을 섬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가족을 전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야 하더라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또한 한 목사는 전 세계에서 북한 주민에게 가장 위험한 곳이 바로 한국이라는 암울한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에 온 탈북민의 자살률은 16%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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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이 다른 나라의 기독교인이 보낸 격려 편지를 읽고 있다.

한 목사의 조언 덕분에 많은 북한 기독교인이 한국으로의 탈북을 포기하고 중국에 남거나 북한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2016년 살해당하기 전까지 한 목사는 최소 1,000명의 북한 주민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그에게 양육받은 제자들을 통해 복음을 들은 사람은 훨씬 더 많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한 목사의 제자들을 많이 만나 보았는데, 김 선생은 가장 최근에 만난 사람이다.

 

중국 땅에 온 김 선생은 북한 내부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 연락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한 목사를 처음 만났다. 한 목사는 김 선생이 북한에 있는 아버지와 통화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 주었고, 김 선생은 한 목사의 도움에 깊이 감동하여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하지만 한 목사는 단순히 북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하는 것 이상의 도움이 김 선생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김 선생에게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필요했다. 사실, 김 선생이 나중에 한 목사에게 돈을 달라고 했을 때 한 목사는 김 선생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한 목사는 김 선생에게 성경을 주었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한 목사는 김 선생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당시 김 선생은 한 목사의 조언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복음에 관한 자료보다 일자리와 돈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신뢰했지만, 주님 안에서 꾸준히 성장했다. 김 선생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김 선생은 몇 해 동안 한 목사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으며, 주님을 따르라는 격려를 계속 받았다.

 

한 목사의 제자들 가운데는 매우 헌신된 일꾼들이 많았다. 정 선생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는데, 그녀는 한 목사에게 양육받은 후 북한으로 돌아가 최고의 북한 사역자 가운데 한 명이 되었고, 70명 이상의 북한 주민에게 복음을 전했다. 상철도 한 목사에게 양육받은 또 다른 주목할 제자였다. 순교자의 소리는 2019년, 한 목사가 상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주제로 단편 영화를 제작했는데, 아래 사이트에 접속하면 그 영화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북한 사역 – 순교자의 소리 | Voice of the Martyrs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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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숙 폴리 대표에게 상담과 기도를 받고 있는 김 선생

하지만 김 선생은 그렇게 훌륭한 제자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김 선생이 가족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 북한으로 돌아가지도 않았고, 한 목사의 조언대로 중국에 남아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김 선생은 한 목사가 가지말라고 권고했던 바로 그곳, 한국으로 탈북했다. 그렇게 한국에 온 뒤, 김 선생은 믿음과 건강과 가족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가 김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 김 선생은 인생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김 선생은 큰 수술을 받고 회복되는 중이었고, 임시 보호소에서 지내고 있었다. 김 선생이 그렇게 연약한 상태에 있었지만, 우리는 오래 전 하나님께서 한 목사의 사역을 통해 김 선생에게 주신 믿음의 증거를 볼 수 있었다.

 

인생길의 난관에도 불구하고, 김 선생은 히브리서 13장 5절 말씀, 즉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굳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직접 체험했다.

 

아마 김 선생은 자신이 주목할 사람도 못되고, 한 목사가 소망한 ‘큰 그릇’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작은 그릇’으로 끝나버렸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 김 선생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셨는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김 선생을 만났을 때 다른 나라의 순교자의 소리 후원자가 보내 온 격려 카드를 전해주었다. 현재 김 선생은 우리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고, 우리는 주님께서 한 목사의 기도에 응답하여 김 선생을 ‘큰 그릇’으로 사용하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한 목사의 신실한 증언은 ​​북한과 중국과 한국에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우리는 한 목사의 제자들을 점점 더 많이 발견하고 있다. 그들은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주님을 따르고 있으며, 한 목사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보살핌을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