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Tagged: 김교신

【김교신 특집】 제6부. 김교신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삶과 죽음

새벽에 통성기도를 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상징이라면, 홀로 일찍 일어나 찬물로 자신의 몸을 씻고 늦게까지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김교신에게 기독교의 상징이었다. 후에 월간 《성서조선》에 실린 158편을 모두 모아 총 7권의 김교신 전집 형태로 재발간한 노평구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김교신]은 다른 조선인들이 독특한 방법으로 신앙을 갖게 하기 위해 《성서조선》을 발간했다. 즉, 그는 기성 교회의 의식이나 설교를 받아들이기보다는 ...

【김교신 특집】 제4부. 우치무라 간조의 제자가 되다

우치무라 간조는 서양 기독교를 “부패하고 부도덕한 기독교’로 여겼다. 교파적 경쟁에 사로잡혀 있으며 서양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는 이것이 비(非)서구권 사람들에게 적합하지 않다며 거부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서구의 교회들은 하나님 나라가 아닌 각 교단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했다.”(황, 2012, 22) 우치무라 간조가 이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은 1884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다닐 때였다. 미국의 ‘세속적인 ...

【김교신 특집】 제3부. 일본은 왜 한국 교회보다 김교신을 더 두려워했는가?

우리 한국인들은 인구 중 25%가 기독교인으로 아시아에서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나라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말은 나머지75%는 기독교인이 아니며, 가장 독실한 한국 기독교인들(매일 새벽기도에 가고 십일조를 하며 교회에서 봉사를 하는 교인들)이 한국 사회에 깊이 있는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의미이다. 한국 교회는 이대로 괜찮은가? 그렇지 않다고 말했던 사람이 있었다. 가장 존경 받은 한국 ...

【김교신 특집】 제2부. 기독교의 두 가지 선택: 토착인가, 이단인가?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김교신이 글을 쓰던 그 시대, 한국은 일제 식민 치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고, 아직 초기 단계에 지나지 않았던 한국 교회는 자기 정체성과 실천을 놓고 고심 중이었다. 이후 기적 같은 성장기를 거치면서, 교회는 성장을 위한 올바른 선택과 방식을 찾은 듯이 보였다. 하지만 기적의 성장이 지나가고 심지어 ...

【김교신 특집】 제1부. 담대히 옳은 일을 할 자유

질문: 김교신의 무교회주의 운동(Non-Church Movement)의 문제점은 무엇이었는가?1. 설립된 교회를 거부했다, 2. 교회와 목사 안수에 속한 모든 권위를 부정했다, 3. 세례를 거부했다, 4. 성찬식을 거부했다— 미주한인장로회 목사 고시 문제집(2015) 중 미주한인장로회(KPCA)의 목사 고시 문제집 중 교회사(敎會史) 부분 250개 문항에는 위의 ‘단답형’ 질문을 포함해 3개의 김교신 관련 문항이 있다. 어떤 문항도 그를 긍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 사실, ...

한국 순교자의 소리, ‘김교신홈’ 개관하다

4월 5일 목요일 오전 10:30, 한국 순교자의 소리가 언론인 및 초청인사들을 모시고 ‘김교신홈’ 비공개 특별 개관식을 연다. 이 집은 초기 한국 기독교 지도자인 김교신 선생이 소유하던 땅에 위치한다. 집 안에는 한국 순교자의 소리의 AM, 단파 및 위성 방송을 위한 라디오 스튜디오와 기독교 순교자 및 한국 기독교인들의 글을 출판하는 인쇄실이 있다. “이 집은 김교신 선생, 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