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폭탄 공격을 당하고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사람들

2018년 5월 13일 동트기 전, 웨니 후두조(Wenny Hudojo)는 인도네시아 자바섬 동부 수라바야(Surabaya)주에 있는 ‘성 마리아 가톨릭 교회(Saint Mary Immaculate Catholic Church)’ 2부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두 아들과 조카에게 서둘러 옷을 입히고 자신도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여느 주일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데리고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의 바쁜 거리를 헤치고 나갔다. “평범한 주일 아침이었어요. 우리는 주일마다 교회에 갔는데 그 주에는 남편이 아파서 우리끼리만 갔어요.” 웨니는 회상했다.

교회 정문으로 들어서면서 11살 첫째 아들 에반(Evan)과 8 살 둘째 아들 나단(Nathan)은 11살 사촌 에벌린(Evelyn)과 예배 후에 할 게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왼쪽에 있던 교회 경비원을 지나친 웨니는 오른쪽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총알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오토바이에 탄 청년 2명이 교회 정문으로 곧장 돌진하고 있었다 …… 웨니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했다.

아침 6시 30분

두 청년(16세, 18세)은 웨니와 아이들에게서 3.5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여성 한 명과 어린이 1 명과 경비원 1 명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당시 상황에 관하여 웨니는 말했다. “폭발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어요. 제가 꼭 귀가 없는 사람 같았어요. 폭탄이 터지고 나서 아주 낮은 소리가 천천히 들리기 시작했어요. 엄청나게 밝은 빛이 보였고 저는 폭발력에 밀려 땅바닥에 넘어졌어요. 그리고 ‘하나님 우리 애들을 찾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죠.”

웨니는 아이들이 곁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피투성이 손으로 허공을 더듬었다. 그리고 비명과 연기와 혼란 속에서 둘째 아들 나단을 찾기 시작했다. 괴로워 우는 아들의 소리가 들렸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우는 거 보니까 살았구나!’라고 웨니는 생각했다. “그 순간, 아들의 울음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요.”

울음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간 웨니는 둘째 나단이 사촌 에벌린 옆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다행히 에벌린도 의식이 있었다. 웨니는 첫째 아들 에반의 이름을 소리쳐 불러봤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에반은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죽은 것처럼 누워 있었다. 자신이 다친 줄도 모르고 아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애쓰던 웨니는 오른쪽 발목이 꺾이는 것을 느꼈다. 축 늘어진 에반을 일으키려고 애쓰던 웨니는 에반의 입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그 애가 내 곁을 떠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웨니가 숙연한 어조로 말했다.

웨니는 겁을 먹고 폭발 현장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 남자가 도와주러 왔고 그 남자가 도움을 요청하자 경비원도 왔다. 그들은 아이들을 차에 태웠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발목이 꺾여 걸을 수 없는 웨니는 교회 정문 앞에 주저앉아 있다가 어떤 교인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성 마리아 가톨릭 교회’에서 서쪽으로 5km가량 떨어진 어떤 개신교 교회 앞에서 한 여성이 9살, 12살 된 두 딸과 창문이 썬팅된 검은 승합차에서 내렸다. 세 사람 모두 황갈색 ‘니캅(niqab)’을 착용하고 있었다. ‘니캅’이란 무슬림 여성이 얼굴에 쓰는 베일로 눈만 드러난다.

계속 수술을 받는 중에 두 아들, 에반과 나단의 시신에 손을 올려놓고 애도하는 웨니.

오전 7시 15분

그 여성과 두 딸이 황갈색 베일을 쓰고 ‘인도네시아 기독교 교회(Indonesia Christian Church)’를 향해 조용히 걸어오는 것을 지켜보던 경비원은 뭔가 수상쩍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교회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려고 경비원이 고함을 지르며 그들에게 달려가는 순간, 눈에 띄는 가방을 들고 있던 여성이 교회 건물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결국 그녀는 폭탄을 안고 터트려 두 딸과 함께 숨을 거두었다.

폭탄은 근처에 있는 사람을 죽일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다. 심지어 폭탄이 터진 지점에서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져 있던 경비원도 살아 남았다.

그 여성과 두 딸이 ‘인도네시아 기독교 교회’ 앞에서 자폭한 직후, 그 세 사람을 내려준 검은색 승합차는 북서쪽으로 3.5km 떨어진 다른 교회로 다가갔다.

오전 7시 53분

페니 수리야와티(Fenny Suryawati)는 ‘수라바야 중앙 오순절 교회(Surabaya Central Pentecostal Church)’ 본당 옆에 있는 계단 아래 서 있었다. 그때 검은색 승합차가 교회 대문을 들이받고 들어와 주차 안내원 두 명을 치었다. 승합차 안에 있던 폭탄 다섯 발이 터지면서 불기둥이 치솟았고, 근처에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 5대와 오토바이 30대의 연료 탱크에 불이 붙었다.

처음 일어난 폭발로 죽은 사람은 두 명이었다. 그러나 이어 발생한 화염이 교회 본당 입구를 순식간에 뒤덮었고 페니까지 덮쳤다. 페니는 주일학교에 간 8살 된 딸 클라리사(Clarissa)를 데리러 가는 중이었다. 페니는 자신이 있던 곳에서 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검은색 승합차가 폭발했다고 말했다.

“제 몸전체에 후끈한 열기가 전해졌어요.” 끔찍했던 폭발 순간을 회상하면서 페니가 더듬더듬 말했다. “사람들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어요.” 페니는 얼굴 대부분을 포함해 신체 85%에 화상을 입었다. 교인 한 사람이 페니의 몸에 붙은 불을 끄려고 물을 부었다. 그때 자신의 그을린 살갗을 타고 물이 흐르던 느낌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고 페니는 말했다. “찬물을 부은 게 효과가 있었어요.” 페니가 감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냉기가 느껴졌죠. 저는 입에도 물을 머금고 있었어요.”

‘수라바야 중앙 오순절 교회’에서 터진 폭탄에 10명이 목숨을 잃었고(부상으로 나중에 목숨을 잃은 사람 포함) 부상자는 더 많았다. 인도네시아 국립 경찰은 이 자살 테러에 사용된 폭탄이 ‘사탄의 어머니(Mother of Satan)’로 알려진 폭탄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자칭 이슬람 국가라고 하는 ‘IS’가 주로 사용하는 폭탄이다.

그날 아침에 터진 폭탄 중에서 세 번째 것이 가장 강력했고 파괴력도 엄청났지만, 사실 훨씬 더 끔찍한 대학살로 이어질 수 있었다. 폭발물 처리반이 나중에 교회 근처에서 폭탄 두 개를 더 발견하고 뇌관을 제거했기 때문이었다.

교회 본당 입구가 화염에 휩싸였을 때 요나단 비안토로 와호노(Yonathan Biantoro Wahono) 목사는 예배당 안에 있던 교인 1,300명을 뒷문 쪽으로 안내했다. 요나단 목사는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지만 저는 누전 때문에 불이 났다고 생각했어요. 불길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새까만 매연 때문에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교회가 폭탄 공격을 받았고 사람들이 많이 다쳤다는 말을 경찰이 전해주었을 때 요나단 목사는 구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지역 병원으로 후송할 수 있도록 도왔다.

대피 지역으로 옮겨진 페니는 딸 클라리사와 남편 에리(Erry)와 시어머니를 다시 만났다. 폭발이 일어났을 때 남편은 예배당 안에 있었고 딸은 2층 계단 꼭대기 쪽에 서 있었다. 딸은 이마와 배와 손에 화상을 입은 상태였고 파편에 맞은 상처 때문에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저는 불 근처에 있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걸으니까 너무 아팠어요. 피부가 타는 것처럼 뜨거웠어요.” 클라리사는 말했다. “물이 없어서 무조건 뛰고 있는데, 할머니가 다행히 내 얼굴에 물을 끼얹어 주었어요. 너무 무서웠고 엄마가 걱정되었습니다.” 딸의 상처를 보자 페니는 눈물이 쏟아졌다.

페니가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교인 한 사람이 페니와 클라리사를 자기 자동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페니는 화상으로 피부가 연약해졌기 때문에 딸을 더 이상 안을 수 없다.

살기 위한 싸움

‘성 마리아 가톨릭 교회’에서 폭파 사건이 일어난 직후, 웨니는 오른쪽 발목의 통증 외에는 아무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파편이 발목 힘줄을 뚫고 들어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중에 의료진은 갈비뼈 골절과 얼굴에 깊게 난 상처를 포함해 그녀가 몇 군데 더 부상당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폭탄이 터졌을 때 고통을 참으려고 애썼어요. 애들이 우선이니까요.” 아이들 때문에 웨니가 느낀 정서적 고통과 아픔은 본인의 육체적 고통보다 더 심했다. 장남인 에반은 이미 죽었지만 웨니는 시신이라도 보고 싶었다. 일단 병원에 입원한 뒤에 웨니는 둘째 아들 나단이 지지대로 다리를 받친 상태로 옆 침상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의료진은 곧 아들의 병상 주변에 커튼을 쳤다.

응급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에서 대기하던 웨니는 간호사의 말을 우연히 들었다. 바로 옆 수술방에 있는 소년이 다리를 절단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파편에 나단의 대퇴동맥이 끊어져 출혈이 심각했다. “마취제가 제 몸에 퍼지기 전에 의료진이 기도할 시간을 주었어요.” 웨니가 울먹이며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내 아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수술이 잘 끝나 웨니는 몇 시간이 뒤에 의식을 되찾았다. 곁에 있는 가족들에게 그녀는 나단 곁에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은 혼자 쉬어도 괜찮지만, 나단은 혼자 내버려두면 안된다고 웨니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다음 날, 의사들은 웨니의 둘째 아들 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과다 출혈로 신체 기능이 정지한 것이었다. “나단은 달리기를 좋아했어요. 다리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희망도 잃었을 겁니다. 그 애는 형이 어디를 가든지 따라가겠다고 늘 형한테 말했어요.”

두 아들과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웨니. 교회에서 폭탄 공격을 당해 다친 그녀의 두 아들 에반과 나단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웨니의 팔에 있는 흉터는 폭발 현장에서 입은 부상 흔적이다.

차를 타고 병원까지 가는 20분 동안, 페니는 자신이 심각하게 부상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끈한 열기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지만 살갗이 타는 냄새가 났어요. 그 순간 딸이 생각났고 그 애가 당한 일이 떠올랐어요 …… 왜 그 애가 그렇게 다쳤는지도 생각했죠.”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들은 페니의 몸이 계속 타는 것을 막기 위해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페니를 담갔고, 눈 위쪽과 윗입술에 난 상처를 봉합했다. 그런 다음에는 몸 곳곳에 박힌 파편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실로 데려갔다. “쇳조각 하나가 제 옆구리를 뚫고 들어갔어요.” 페니가 자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폐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은 몇 시간에 걸쳐 페니의 화상을 소독했다. “그 순간 후끈한 열기가 다시 느껴졌어요. 통증이 다시 시작된 거죠.”

시간이 지나면서 페니의 피부는 단단해졌다. 네 시간 간격으로 마취 주사를 맞았고 의사들은 그녀의 죽은 피부를 조심스레 벗겨냈다. 페니는 그런 시술을 21번이나 받았다. 페니에게 건강한 피부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피부 이식 수술은 할 수 없었다. 입원한 3개월 동안, 요나단 목사와 교인들이 정기적으로 중환자실을 심방하여 격려하고 기도해주었다.

건축 회사 관리자로 직장에 복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페니는 망연자실했다. “2008년부터 그 직장에서 일했어요. 폭탄 테러를 당한 뒤에 저는 우울증에도 걸렸어요. 그런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퇴원한 뒤에 페니는 손에 힘을 되찾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수 개월 동안 물리치료를 받았다. 치료 과정은 더디고 고통스러웠다. “박해는 불편한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일어난 일을 잘 감당하면서 살아야 하는거죠.”

페니의 발등에는 폭탄 공격 당일 신고 있던 샌들의 무늬가 흉터로 남아있다.

더 강해진 사람들

현재 페니는 화상으로 갈라진 자주빛 피부가 너무 약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페니의 발등에는 그날 아침에 신고 있던 샌들의 무늬가 흉터로 남아, 끔찍했던 그날과 그로 인해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계속 상기시켜 준다.

페니는 거울에 비친 화상 흉터 가득한 자신의 얼굴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 받은 충격과 흉한 외모에 대한 수치심을 극복하기가 어려웠다는 사실을 페니는 인정한다. 지금도 페니는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자신을 그런 상태에 빠트린 사람들을 용서하기로 결심했다. “저는 분노를 안고 살지 않아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일이 나에게 유익이 되게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믿습니다.” 페니는 차분하지만 당당하게 말했다.

2018년 5월 13일, 폭탄 테러로 부상을 당한 페니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자기 인생의 모든 영역에 대한 주도권을 포기해야 했다. 페니는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 특히 남편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매일 목욕하고 옷을 입으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연약한 피부에 들러붙지 않는 헐렁한 옷도 입어야 한다.

페니의 새로운 삶 속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신체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딸과 포옹하면 견딜 수 없이 피부가 아프다. “너무 슬퍼요!” 페니는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얘기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여 강조했다.

올해 5학년인 딸 클라리사는 통증에서 거의 해방되었다. 엄마를 위해 매일 기도하는 클라리사는 장차 의사가 되어 엄마처럼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한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동부 수라바야(Surabaya) 교회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당한 페니 수리야와티(Fenny Suryawati)는 신체의 85%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웨니는 지금도 매일 진통제를 먹는다. 또한 오른쪽 팔다리와 어깨를 원활하게 움직이고 힘을 기르기 위해 일주일에 세 차례 물리 치료를 받는다. 웨니는 오른손을 보여주면서 “어떤 때는 손가락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두 아들을 잃은 극심한 고통을 기도로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다. “애들이 살아있었을 때는 무슨 문제가 생길때마다 애들 목소리나 노는 소리를 들으면서 위로받곤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어요.”

웨니의 남편은 아이들이 폭탄 공격을 받았을 때 자신이 현장에 있었다면 목숨이라도 던져 지켜주었을 텐데 그렇게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있다. 그런 남편에 대해 웨니는 “남편은 저랑 많이 달라요. 저는 애들이 보고 싶을 때만 눈물이 나는데 남편은 늘 눈물을 흘리거든요”라고 말한다.

둘째 아들 나단이 죽고 일주일이 지난 뒤, 웨니는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들을 진정으로 용서하는 방법에 관하여 교회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웨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치유되기도 하고, 그 사건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웨니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교회 몇 군데에서 간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는 것이 정말 기뻐요. 제 간증이 그들에게 축복이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들 에반은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조용한 아이였다. 좀 더 외향적인 둘째 아들 나단은 언제나 친구들을 위해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쾌활한 아이였다. 두 형제는 장난감 총을 쏘면서 사촌 에벌린과 노는 것을 좋아했다. 현재 12살인 에벌린은 6살 때부터 웨니 부부와 함께 살았다. 에벌린은 폭탄 공격에 오른쪽 팔목이 부러졌을 뿐 아니라 오른쪽 손가락 세 개의 신경이 절단되었다. 결국 왼손으로 글을 쓰는 법을 배워야 했다. 또한 에벌린은 다리와 발에 박힌 파편을 제거하기 위해 세 차례 수술을 받았다.

“지금도 에벌린의 양쪽 발에는 파편이 있어요. 허벅지에도 있죠.”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에벌린을 보며 웨니가 말했다. “의사들은 허벅지 파편을 제거하는 것에 관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다리가 마비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에벌린은 사촌들과 놀던 추억에 관해 이야기할 때 전보다 수줍음도 덜 타고 말도 잘하지만, 울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한다. “에반과 나단이 너무 보고 싶어요!” 에벌린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올해 열두 살 된 웨니의 조카 에벌린은 이제 왼손으로 글씨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폭탄 파편에 오른손 신경이 절단됐기 때문이다.

여전히 신실하게

폭탄 공격이 발생하고 며칠이 지난 뒤, 수라바야 중앙 오순절 교회의 소그룹 지도자들은 교인들에게 연락해 “이번 주 주일 예배는 교회에서 정상적으로 드립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요나단 목사는 말했다. “그런 일을 겪었다고 교회를 떠나면 안 된다고 교인들을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실과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공격이 발생한 다음 주일, 지역 경찰과 인도네시아 군대가 수라바야주 전역의 교회들을 경호해준 덕분에 기독교인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배드렸다. 수라바야 중앙 오순절 교회에서는 경찰이 주변 도로를 차단하고 보호를 강화했다.
교회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주차장에 대형 천막을 설치했고, 아침 6시와 오후 3시 두 차례 열린 예배에 1,000명이 넘는 교인이 참석했다.

폭탄 공격이 발생한 바로 다음 주일, 예배에 참석한 1,000명은 평소 4부로 나눠 드린 예배에 참석하던 5,000명에 비하면 소수였지만, 지역 사회 주민들은 신자들의 용기와 신실함에 크게 감명받았다. 요나단 목사는 수많은 무슬림 이웃들이 집 밖에 나와서 성경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독교인들을 지켜보았다고 말했다.

“그 교회의 무슬림 이웃들은 ‘기독교인들은 이런 일을 겪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직도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했어요. 또한 그 교회의 주차장을 관리하는 어떤 무슬림 이웃은 ‘나는 이 교회를 보면서 정말 놀랐어요. 폭격을 당한 후에 교회가 더 강해졌거든요.’라며 감탄했죠.”

요나단 목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십니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완벽하니 하나님께 화내지 마세요.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거든요!”

요나단 목사는 수라바야 중앙 오순절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애쓰는 한편, 더 튼튼한 문과 보호벽을 설치했다. 그는 교인들의 안전을 걱정하기도 했지만, 자신들이 그리스도께 여전히 신실하다는 사실을 무슬림 이웃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폭탄 공격을 당한 뒤에 요나단 목사가 처음 전한 메시지의 본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말씀이었다. 또한 요나단 목사는 핍박당할 때 서로 하나가 되어 신실함으로 가해자들을 용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회개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요나단 목사는 교회의 치유, 특히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자신의 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계속 쓰임받게 해 달라고도 전 세계 교회에 기도를 부탁했다.

폭탄 공격에 훼손된 예배당 건물 일부는 수리되었고, 예배당 입구에는 더 크고 튼튼한 문과 보호벽이 설치되었다. 교인들은 계속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무슬림 이웃들을 예전처럼 변함없이 사랑한다. 요나단 목사는 2차 공격이 전혀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지상대명령을 완수하는 것이 우리 임무입니다. 다른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왜?”라고 묻기

인도네시아 국립 경찰은 이번 폭탄 공격이 인도네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자녀를 포함한 일가족 전체가 저지른 공격이었다고 발표했다. 이 가족은 IS의 인도네시아 지부 JAD(Jamaah Ansharut Daulah)의 단원들이다. JAD는 2016년에 인도네시아 사마린다(Samarinda)에 있는 교회를 폭탄으로 공격한 적이 있었다.

2017년, 인도네시아 국민 수백 명이 IS에 가입할 목적으로 이라크와 시리아에 갔다. 당국은 당시 시리아에 갔던 이 가족의 부모가 최근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공격을 자행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대테러국(National Agency for Combating Terrorism)은 이들의 이름을 테러 감시 대상자 명단에 이미 올린 상태였지만, 이들이 가족과 함께 폭탄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간파하지 못했다.

그날 JAD가 자행한 폭탄 공격으로 세 교회에서만 인명 피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날 밤 9시에는 한 아파트에서 시한폭탄이 너무 일찍 터지는 바람에 무슬림 일가족 여섯 명 중에서 세 명이 죽었다. 그들은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 있는 교회들을 추가로 공격할 계획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세 교회에서 폭탄이 터진 그 다음 날, 수라바야 경찰서 본부에서 폭탄이 또 터져 경찰관 4 명이 다치고 무슬림 일가족 5명 중에서 4명이 죽었다. 생존한 1명은 8살 여자 어린이였다.

이 치밀한 테러로 인한 사망자는 총 28명(자살 폭탄 테러로 죽은 13명 포함)이고 부상자는 57명이 넘는다. 2002년 발리 폭탄 테러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많은 인명이 살상된 공격이었다. 당국자들은 이번 공격이 IS의 복수극이라고 분석한다. JAD의 지도자가 2016년에 자카르타에서 발생한 테러에 연루된 혐의로 투옥되자, IS가 보복할 목적으로 이번 테러를 지시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폭탄 공격의 명백한 동기를 당국자들이 밝혔지만 피해자들은 계속 질문한다. “왜 하필이면 나일까?” 요나단 목사는 자신의 교회가 무슬림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했는데도 이번 테러의 목표가 된 까닭이 무엇인지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무슬림 금식 기간인 라마단이 끝난 뒤, 그 교회 교인들은 오랜 금식으로 기력이 쇠한 무슬림 이웃에게 음식을 주었고, 진료소를 열어 무슬림을 포함한 이웃의 환자들을 저렴한 비용이나 무료로 치료해주었다.

요나단 목사는 털어놓는다. “화가 나지는 않지만 자꾸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잘못한 게 뭐지? 우리는 선을 베풀었는데 그들은 왜 우리를 공격했을까?” 그러나 더 깊은 차원에서, 요나단 목사는 핍박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영적으로 봤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정해진 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교인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이죠.”

순교자의 소리는 웨니와 페니의 병원비는 물론이고 그 폭탄 공격에 다친 다른 사람들의 병원비도 계속 지원해주고 있다.

두 아들을 잃은 뒤, 웨니는 삶의 목표를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정서적으로 여전히 고통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들 사진을 보고 있으면 묻지 않을 수가 없어요. ‘왜 하필이면 내 아이들한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어요. 그 애들을 엊그제 낳아서 바로 어제 잃은 것 같아요.”

“왜 저와 제 아이들이 그런 일을 당했을까요? 아직도 제게는 이 질문이 매우 중요해요. 폭탄 공격에 화상을 입고 두 아들을 잃은 것이 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저는 지금도 ‘왜?’에 대한 답을 찾고 있습니다. 간증해달라고 부탁하는 교회들의 초대에 응하면서 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왜 하필이면 나일까?”라고 묻던 페니는 치료 과정에서 “왜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셨을까?”라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어떤 의사는 그녀처럼 심한 화상을 입고도 살아남은 사람을 그때껏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요즈음 페니는 전보다 더 용기를 내서 대중 앞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의 화상 흉터를 빤히 바라보는 사람들 시선이 느껴질 때면 그녀는 조용히 하나님께 묻는다. “하나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제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화상에 관하여 물으면 그녀는 그리스도를 열정적으로 전한다. 그녀는 하나님이 그녀의 이야기와 고통을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기를 원한다.

“제가 마음에 품고 있던 첫 번째 질문은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라고 몇몇 사람들이 다가와 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페니가 미소 지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