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이 어두운 밤, 우리가 대여한 승합차가 자동차 바퀴 자국이 깊이 패인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어 높은 철문 앞에 멈췄다. 승합차에서 내리자 키 작은 한 청년이 미소지으며 출입구 문을 열어주었고 우리를 교회 안으로 맞이했다. 그 스리랑카 청년은 외국인이 방문했다는 사실을 이웃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서두르라고 우리에게 재촉했다. 밝은 색 페인트가 칠해진 교회로 들어가 신발을 벗자 그 청년이 플라스틱 의자를 둥그렇게 배열했고 카순Kasun 목사가 따스한 인사를 건넸다.
카순 목사는 그 작은 섬나라의 수도 출신이지만, 지금은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이 거주하는 동부 해안의 한 마을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카순 목사는 몇 해 전에 교회 개척자로 그 마을에 파송되었는데, 사실 그 마을은 2019년 바티칼로아Batticaloa 지역에 있는 시온 교회 폭파 테러의 배후 주동자가 본거지로 삼고 있는 이슬람 사원에서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카순 목사가 그 마을에서 사역한 몇 해 동안, 그가 개척한 교회는 100명 규모로 성장했다. 그 결과로, 그는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바로 저기에서 제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조금 전에 지나온 출입구를 가리키며 카순 목사가 말했다. 그런 다음 카순 목사는 화가 잔뜩 난 한 남자가 교회 밖에서 총을 들고 위협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카순 목사는 그 남자가 고함을 지르며 자신을 향해 총을 휘둘렀을 때 이제 곧 죽겠구나 생각하며 두 눈을 감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잠시 후에 눈을 떠 보니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고 말했다.
대화를 계속 나누면서 카순 목사가 예배당 벽에 붙은 도표 하나를 가리켰다. “이 동네에서는 특별한 방식으로 사역해야 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예배당에서 모이는 교인이 100명 가까이 되지만, 카순 목사가 섬기는 지역 전체에서 최소한 20개의 작은 가정교회가 모이고 있었다. 이슬람을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이 크기 때문에 교인들은 조심해야 한다고 카순 목사는 설명했다.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성도는 일상적으로 가족들의 거부와 공격을 당한다.
우리를 맞이해준 청년에게 어떻게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갖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청년은 카순 목사의 전도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놀랍게도, 그 청년은 무슬림 출신이 아니라 힌두교에서 개종한 사람이었다. 그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스리랑카는 불교가 주를 이루는 나라이지만 동부에는 힌두교도와 무슬림 공동체가 산재해 있다. 힌두교 마을은 화려한 색깔의 사원으로 식별하기 쉽고, 상업을 기반으로 하는 무슬림 마을은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북적거리는 시장 노점에서 물건을 사는 여성들이 특징을 이룬다.